
전에 블로그에 리뷰 아닌 리뷰를 썼던 '그릿'이나 최근에 읽고 중고서점에 고이 판매한 '마인드셋'처럼 타고난 재능보다는 노력을 통한 성장이 우위에 있음을 피력하는 자기계발서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그리고 읽을 때마다 진하게 공감하는 대목이 있다. 아이의 타고난 재능에 대해서 칭찬하지 말고 성취를 위해 한 노력의 과정을 칭찬해주라는 것이다.
타고난 재능에 대해 추켜세우게 되면 아이는 자기가 노력이 없이도 이만큼 했다, 얼마 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다 라는 것을 부모에게 보여주고 또다시 칭찬을 받기 위해 일부러 쉬운 과제를 고르게 된다 - 그러다 보면 본질적인 성취의 길에서는 멀어지게 된다 는 것.
예전에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될 오십 가지 종류의 말이었나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일일이 꼽아보니 성장과정에서 그 중 어떤 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콩가루 집안이 분명할 텐데도 가족 간에 사랑이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위에 쓴 것과 같이 '아이에게 독이 되는 칭찬'은 아주 많이 들었다. 머리가 좋다, 아이큐가 높으니까, ㅇㅇ에 재능이 있다 등 전형적인 재능 지향형 칭찬 투성이였다.
깎아내리는 말로 모욕을 주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딸에 대한 사랑으로 칭찬을 쏟아부은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그래서 블로그는 몰래 한다) 칭찬에 잔뜩 스포일된 나는 노력 자체를 부끄러워했다. 잠깐 공부했는데 그런 것치곤 좋은 점수가 나왔어, 벼락치기했는데 그럭저럭 잘 나왔네, 시험기간에 놀면서 밤샘했는데도 이 정도 했잖아, 라는 생각을 하며 제자리걸음만 하고 더 나아갈 줄 몰랐다. 노력에 비해 좋은 점수를 받으면 거기에 만족했다. 지금 생각하면 노력하는 과정의 쓴맛을 견디는 게 무서웠던 것 같다. 재능 칭찬을 수천 번 들어도 될 놈은 됐겠지만, 나는 그저 그런 종자다.
예전에 친구들에게 칭찬을 많이 했다. 스쳐지나가듯 불편해하는 얼굴을 본 적도 있었다. 뭘 잘못했는지 잘 몰랐고 짧은 반응이었기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사교적인 이야기를 하는 중에 칭찬을 많이 들었다. 가끔 이유를 모르게 가슴이 답답했다. 역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느 날, 칭찬도 평가다, 라는 구절을 어딘가에서 읽었다. 머리를 한 대 맞는 것 같았다.
그야 물론, 깎아내리는 말로 모욕을 주는 것보다는 겉보기에 나을지도 모르지만. 평가가 맞다. 너는 예쁘다 라고 하면 나에게 이러저러한 기준이 있는데 그 중에서 당신은 괜찮은 축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얼마 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는 정말 숨쉬는 것처럼 칭찬을 했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개의치 않고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붙잡고 오늘 참 보기 좋으시네요. 헤어스타일이 참 멋지세요. 정말 상냥하세요. 하면서 말을 걸었다. 나는 결국 견디지 못했고, 그의 '선의'를 피해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 함께 일하지 않는 지금 곱씹어보면 칭찬을 배제하더라도 진짜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자꾸 어딘가에서 읽은 것을 갖다 붙여서 죄송합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것은 주위의 어떤 아이가 뭔가를 곧잘 해서 칭찬해주곤 하는데 그렇게 칭찬 듣는 아이가 너무너무 우울해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아이 부모가 자신이 아이를 칭찬해주는 것을 그만해줬으면 한다고. 그런데 습관적으로 아이에게 칭찬이 나와서 나쁜 말도 아닌데 너무너무 어렵다고. 아이가 평가를 받는 것 같아서 싫은 모양이니 그냥 하지 마세요. 라고 어떤 현자가 댓글 달았다.
사실 지금 나이는 먹을 대로 먹고 스스로에게 뭣도 없었다는 게 밝혀진 시점에도 재능에 대해 칭찬을 들으면 설렐 때가 있다. 그렇다고 칭찬하지 말라고 할까. 그 누군가에게는 어찌되었든 나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있고, 그의 칭찬은 내가 야금야금 해온 노력이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니까. 칭찬은 여전히 좋아한다.
설탕은 맛있지만 구조가 단순해서 바로 혈당을 쭉 높여버리는 독이다. 아주 끊을 수 없다면 적당히 먹을 줄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칭찬도 사교술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외줄 타는 것처럼 조심조심 단련하자. 오늘의 결론.
태그 :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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